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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진/국민] 레몬 클래스 - 8

맨정신에 하는 키스도… 괜찮죠? / 미술 선생님 김태형 X 국어 선생님 김석진





맨정신에 하는 키스도… 괜찮죠?





[뷔진] 레몬 클래스 - 8화

- 맨정신에 하는 키스도… 괜찮죠?






 시선에 온도가 있었다면 아마 저 녀석의 시선에 내 얼굴이 녹다 못해 뚫어졌겠지.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이마가 저리다 못해 아프다. 어른인 척하더니 고등학교 때랑 별반 달라진 게 없네 뭐. 이렇게 당당한 척 말하지만, 실제는 저 시선이 민망해 얼굴 한 번 들지 못하고 있는 나다. 중간고사로 시험 문제를 내느라 한껏 조용해진 교무실에서 김태형의 눈빛에 내 얼굴이 지져지는 소리마저 나는 것 같다. 치지지지지직, 하고.


" 김석진 선생님. "

" … 네? 저 부르셨어요? "

  

 교무실의 정적 탓에 김태형이 날 부르는 목소리가 더 또렷이 들린다. 김태형 입에서 나온 내 이름 석 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입만 웃으며 날 쳐다보고 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야… 얼굴 좀 펴… 너 무서워…. 


" 제가 수업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데, 김석진 선생님 도움이 필요해서요. "

" 제 도움이요? "

" 네. 문학 작품을 기반으로 둔 영화를 볼 건데, 같이 보고 어떤지 말씀해주시겠어요? "

" 그런 거면 제가 집에 가서 영화를 보고 말씀드릴게요. "

" 제가 애들한테 보여주면서 할 코멘트들이 있어요. 같이 이야기하면서 참고하려고요. "


 지금 김태형은 대놓고 판을 짜고 있다. 선생님들이 많은 교무실에서 부탁하면 내가 쉬이 거절하지 못하는 걸 알기에 펼쳐 놓은 판이다. 나는 저런 부탁처럼 보이는 명령이 싫은데, 김태형은 고등학교 때에도 줄곧 저런 식의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곤 했다. 너무 잘 짜인 판에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어 짧게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제야 김태형의 눈꼬리가 조금 접힌다.


" 그러면 저녁 먹고 미술실에서 봐요. " 


 정규 수업 이후로 수업이 없는 5층 복도는 조용하다. 조금 어둑해진 복도에 어디가 미술실인가 싶었지만, 복도에서 유일하게 켜져 있는 빛이 보여 저기가 미술실이겠거니 하고 무작정 걸었다. 잠깐… 근데 너무 어둡잖아! 스산한 복도가 무서워 미술실을 향해 걷는 속도를 더 높였다. 다급히 미술실 뒷문을 여니 미술실 텔레비전 앞 의자에 앉아 있는 김태형이 뒤돌아 나를 쳐다본다. "여기 앉으세요." 자신이 앉은 반대쪽 책상을 툭툭 치며 뱉는 말에 미술실 문을 닫고 미술실 안에 들어섰다. 

 내가 자리에 앉자 김태형이 자리를 옮겨 텔레비전 옆에 있는 컴퓨터로 걸어간다. 자리를 옮긴 김태형이 키보드를 누르니 영화가 곧장 시작한다. 내 앞으로 올 줄 알았는데 미술실 앞문으로 가더니 앞문을 열고 미술실 불을 끄고 와 내 맞은편에 앉는다. 아직은 여름이라 해가 길어, 미술실에는 감청색의 저녁 빛이 가득 깔렸다.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출생… 맞아?]

[네]

[도시샤 대학 문학부 선과학생… 히라노마 도쥬]


 흑백으로 시작하기에 옛날 영화인가 했는데 '동주'다. "한국 문학 기반 영화가 별로 없더라고요." 어둠 속에서 들리는 김태형의 말이 '김석진 선생님이랑 연관된 영화가 별로 없더라고요.'라고 들린다. "동주, 나쁘지 않죠." 김태형의 말에 응하듯 툭 던지듯 대답했다. 김태형을 쳐다보진 않았지만, 어둠 어딘가에 있을 나를 가늠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 같다. 어둠마저도 감청색이 감도는 미술실에는 나와 김태형의 숨소리, 그리고 '동주' 영화 특유의 공기를 흔드는 섬세한 긴장이 맴돈다.

 영화가 흡입력이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금방 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어색한 침묵이 돈다. 창문을 등지고 앉아있는 김태형의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엔딩 크레딧의 그 하얀 글자들 덕에 언뜻언뜻 태형이의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를 얼굴이다. 나라도 미술실 불을 켜려고 일어나려는데, 김태형이 나보다 한발 빠르게 일어난다.


" 일어나지 마세요. "


 일어나지 말라는 말이 저렇게 분위기 잡고 할 말인가. 가만히 앉아 있는데 김태형이 일어나 내 앞으로 온다. 처음에는 불을 켜러 가는 줄 알았는데 그 발걸음이 내 앞에서 멈춘다. 고개를 들고 김태형 얼굴을 보려는데 이젠 감청 빛도 돌지 않는 미술실이라 김태형의 얼굴 위에는 표정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명암 하나 없는 검정 색만 칠해져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눈앞의 검은 형체의 동선은 너무나 잘 보인다. 그니까 내 말은,


" 피하지 마. "


 나한테 키스하려고 다가오는 김태형의 실루엣도 너무 잘 보였다 이거다. 난 피하지 말라는 김태형의 말을 듣는 것처럼 김태형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어둠 속에서 입술에 닿는 체온이 야릇하다.

 사실 김태형과의 첫 키스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너무 술에 취했었으니까. 문득문득 이 녀석의 체온이나 혀의 느낌이 - 미쳤어. 진짜 - 생각날 뿐이지, 그 시작이나 과정이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 맨정신에 김태형과 키스를 해본 적이 없어, 내가 과연 얘랑 다시 키스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괜한 생각이지. 내 어깨를 잡고는 키스를 하려고 다가오는 김태형에게 손을 뻗어, 목 언저리를 더듬다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걸 허락으로 받아들였는지 김태형의 혀가 내 입안으로 들어온다.

 내 입안에 들어선 따뜻하고 말랑한 혀를 내 혀로 부드럽게 감쌌다. 그러자 김태형이 내 양옆 겨드랑이를 잡고는 책상 위로 나를 올린다. 얼굴만 봐서는 정말 여려 보이는데, 날 들어 올려 책상에 앉히는 걸 보니 얘도 남자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김태형의 뒷목을 마저 손으로 쓰다듬으며 깊게 키스하니 이 녀석이 내 옆구리를 잡던 손을 허리로 옮겨 깊게 허리를 감싸 자신 쪽으로 바짝 잡아당긴다. 내 아래와 김태형 아래가 민망할 정도로 바짝 붙었다. 너 아래 단단해진 거 아니…? 

 뭐라 할 처지도 못 되는 내 아래를 김태형도 느껴졌는지, 더 붙을 수도 없는 입술인데도 태형이는 더 다급하게 내 입술을 찾았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키스가 그 조급함과 긴장 때문에 낯설어져 조금씩 숨이 가빠온다. 우리 둘의 호흡이 가빠져 숨이 모자라는데, 김태형은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 하아… 잠까, 잠깐…. "


 덜컹. 밖에서 바람이 부는 건지 미술실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몸을 떨며 놀라는데, 너는 신경 쓰이지 않는지 내 뒷목을 더 세게 잡아 오며 네 쪽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창문 밖에 차가 지나다니는 불빛에 너의 굶주린 눈빛이 스치듯 내 눈앞에 밝혀지고 사라진다. 너는 나에게 잠깐도 주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난 진짜 멍청한 놈이야. 그러지 않고서야 너와 다시 키스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곳에서 끝났어야 할 키스를 나는 왜 여기까지 잡아당기고 있는 걸까. 나는 현실에서 괴리된 이 키스의 연유도 모르며, 너의 혀를 받아내고 있었다. 혀와 함께 굴러들어오는 너의 숨에 폐에 숨이 차 죽을 것 같아 겁까지 났다.


" 맨정신에 하는 키스도… 괜찮죠? "


 부정은 못하겠다. 너의 혀는 기분 좋고, 내 허리를 감싸는 두툼한 너의 팔이나 섬세한 손가락, 그리고 내 입안에서 감돌고 떨어지는 너의 숨소리가 좋다. 그러니 난 앞으로 속수무책으로 이 키스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제 거절할 한 치의 이유마저 완벽히 소멸했다. 내 허리를 쓰다듬는 김태형의 손길과 내 혀를 잔뜩 감싼 김태형의 체온이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나는, 더는 제자와 선생님 관계를 들먹일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우리는 키스를 했고, 언뜻언뜻 보이는 서로의 실루엣을 따라 서로의 얼굴만 아슬아슬하게 만질 뿐이었다. 그 뒤 우리는 미술실에서 나와 교무실로 가 가방을 챙기고 같이 퇴근했다. 우습게도 그 상황에서는 그러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사실 의연한 척했지만, 난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 미술실의 키스 후 곧 중간고사가 끝났고, 1학년 중 몇 명의 선생님들만 모여 중간고사가 끝난 겸 회식을 했다. 계속 술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니 내가 어느 정도로 취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 잠시 정신이라도 차리자는 생각으로 자리를 피했다. 술집을 나와 사람들이 많은 큰 거리에서 벗어나고자 술집 옆에 나있는 골목길로 들어서니 담배를 피우는 김태형이 보인다. 나를 보자 급히 담배를 숨기는 김태형에게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둘만 있는 게 어색해 다시 들어갈까 했지만 그러면 내가 신경 쓰여 피한다는 느낌을 줄까 봐 그러지 못했다. 잠깐만 있다가 들어가자….


" 김석진 선생님은 담배 안 피우세요? "

" 냄새 별로 안 좋아해서요. "

" 그래요? 그럼 끊어야겠다. "


 뭘 끊어? 담배를? 네가? 왜?

 김태형은 나를 보고 씩 웃고는 담배를 자신의 앞에 놓인 담배꽁초가 가득한 양철통에 던졌다. 김태형의 낯간지러운 말에 귀가 홧홧하다. 올라오는 열기에 더는 이 자리에 못 있겠다 싶어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어느새 내 뒤로 다가온 김태형이 내 손목을 잡는다. 김태형 선생님은 정말 나 어디 못 가게 하는데 일가견 있다. 그쵸?

 무슨 말을 하나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쳐다보니, 또 고개를 숙여 얼굴을 들이댄다. 이젠 키스가 쉽나 봐? 하지만 웃기게도 김태형의 감기는 긴 속눈썹을 따라 자연스럽게 내 눈썹도 서서히 내려진다. 나도 몰라. 아니, 뭐든 안 알래. 내 입안을 훑고는 내 혀를 깊게 감고 빠는 혀에 묘하게 흥분이 돼 김태형의 목 뒷덜미에 두었던 내 손을 옮겨 김태형의 가슴 위로 옮겼다. 그러자 김태형도 나를 벽에 붙여 입을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올 것 마냥 깊게 키스를 해댄다. 힘 조절 좀 해줘, 난 너랑 키스하면 힘이 다 빠진단 말이야.


" 악! 잠… 잠깐! "


 다급한 키스를 이어간다 했더니 김태형의 허리를 지분거리던 못된 손이 내려가 내 엉덩이를 덥석 쥔다. 하지 말라는 뜻으로 김태형의 가슴을 밀어 키스를 멈추는데, 내 엉덩이에 붙은 손은 떠나갈 생각을 안 한다. 한 손으로는 내 허리를, 다른 손으로는 내 엉덩이를 움켜쥔 것도 모자라 내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김태형이 슬슬 무섭다.


" 태형샘. 좀 진정해봐요. "

" 저한테 변명 안 할 거예요? "

" 변명이요? "


 내 말에 내 입술을 바라보던 김태형이 시선을 올려 나를 쳐다본다. 아니, 난 진짜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러자 김태형이 맘에 안 든다는 식으로 눈을 깜빡거린다. 얜 진짜 웃긴 게 눈을 깜빡거리는 방식으로도 자기감정을 표현한다. 이 정도면 연기해야 되는 거 아니니?


" 저번에 정국 학생이랑 대화한 거, 변명 안 해요? "   

" 아…. "


 역시 김태형은 그날 내가 정국이랑 한 이야기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나 보다. 그 말에 오해라고 말을 하려다가 문득 얘와 내가 그런 걸 해명할 사이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난 얘랑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썸? 이게 썸인가? 그리고 보통 썸 사이에 오해가 생기면 푸나? 아니, 썸 이전에… 나는 김태형이랑 사귈 마음은 있나? 그리고 내가 정국이가 남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쉽게 남한테 발설해도 되는 건가?

 결국 오해를 풀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 진짜라서 안 푸는 건지, 오해인데도 안 푸는 건지. "

" …. "

" 이래도 저래도 이젠 상관없지만. "


 그렇게 말을 마친 김태형은 다시 입술을 부딪치며 내 혀를 찾았다. 그리고 나는 배웅을 위해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처럼 내 혀로 김태형의 혀를 맞이했다. 우리는 관계를 상실한 키스를 계속해서 이었고, 우리 사이는 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담배를 끊겠다던 김태형은 정말 그날 이후로 피지 않았고, 호석샘은 "태형샘, 진짜 대단하다."라고 말하며 김태형에게 감탄과 경외를 보였다. 담배를 끊은 김태형은 담배 대신 습관처럼 내 혀를 찾았지만 말이다. 시간이고 장소고 따지지 않고. 

    




 말이 안 되는 관계였다. 우리는 사귀지는 않지만, 키스를 했고 서로의 아래를 부딪쳤다. 김태형은 날 좋아하지만 나는 나의 마음을 모르겠다. 김태형을 생각하면 낯간지러운 감정, 닿고 싶은 감정, 그런 말랑거리는 감정들이 떠올랐지만 동시에 두렵고, 무서웠다. 이 이중적인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 감정을 일깨워주려는 누군가의 수작처럼 일련의 사건들이 터졌다.

 

" 김석진 선생님. 저랑 이야기 좀…. "


 2층 복도 끝에 있는 상담실에 계신 상담 선생님이었다. 상담 선생님을 따라 상담실에 가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길 주저하신다. 우리 반 애가 사고를 쳤나…? 선생님이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겠는지, 마른 침을 삼키며 쪽지 하나를 책상 위로 꺼냈다. "제가 고민함 관리하잖아요…." 하고 말끝을 흐린 선생님이 나에게 쪽지를 건넸다.


김태형 선생님과 김석진 선생님이 키스하는 걸 봤습니다.


 누가 쓴 건지 모르게끔 대충 휘갈겨진 글씨지만,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정확히 읽히는 쪽지였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머리가 하얘지는구나. 무슨 변명의 말이라도 꺼내야 하는데 손이고 입이고 어느 곳 하나 움직이는 게 없다. 재치와 요령이 부족해 타이밍을 놓친 나를 본 선생님은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말을 잇는다. 변명이 가능한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렸다.


" 선생님. 요즘 세상에 사랑에 성별이 어딨겠어요. 그래도… 학생들한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선생님이 조절하…. "


 앞부분만 들리고 뒤부터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득해진다. 세상에, 나랑 김태형이 키스하고 있는 걸 봤다고? 언제인 거지? 처음 학교에서 키스했던 미술실에서 본 건가? 아니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했었던 체육관? 애들이 다 하교하고 나서 복도에서 했던 키스를 본 건가? 며칠 전에 가장 늦게 급식을 먹고, 급식실 뒤쪽 골목에서 키스했었던 때인가? 아니면 어제 흡연실하고 자판기 사이에서 했었을 때?

 5월, 5월이라는 한 달을 통째로 우리는 서로를 찾았다. 마치 지난 잃은 시간을 서로에게 보상해주겠다는 것처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사이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키스를 했다. 그러니 짐작되는 곳도 너무 많다.


 그리고 이제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든 김태형과 내가 키스한 건 맞고, 그걸 본 학생이 있다는 게 문제다. '사랑에 성별이 어딨겠어요.' 상담 선생님의 말은 틀렸다. 사랑에 성별이 없는 세상이라면, 선생님이 저 문장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겠지. 세상의 사랑에는 성별이 존재한다. 거기에 더해 제일 큰 문제는 내가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거고. 누군가 나를 눕혀놓고 명치를 밟아대는 기분이다. 뇌의 가장 안쪽부터 녹고 있는 기분. 이 순간 다음부터는 어떤 것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 아시겠죠… 선생님? "

" …이만 가보겠습니다. "


 아시겠죠 선생님? 아시겠죠 선생님? 아시겠죠 선생님? 아시겠죠 선생님?

 너무 많은 게 담긴 말에 명치를 넘어 심장까지 답답하다. 아주 오랫동안 내가 무시해왔던 감정의 실체를 직면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내가 떠나버린다는 것에 대한 공포.

 내가 김태형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거절할 때 나 자신에게 뭐라 변명했더라… 제자인 태형이라, 고등학생인 태형이라… 그리고 남자인 태형이라… 그래서 받아줄 수 없다 했었지. 사실 나도 알고 있었을 거다. '남자'인 태형이라 거절하고 싶었던 거라는 걸. 그 앞에 수많은 이유는 사실 나 자신이 비겁해지기 싫어서 붙인 이유였겠지.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 김석진 선생님, 오늘 저녁에 미술실에서 제 일 좀 도와주시겠어요? "


 너도 알지? 나 이기적인 사람인 거.


" 안될 것 같네요, 태형샘. "


 그래, 이기적인 나라… 선택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널 또 과거 속에 가둔다. 눈이 오던 그날처럼.










[국민] 레몬 클래스 8화 中 댄스 클레스 02

- 싫은데요.






 수업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종이 치는데도 애들은 반에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지민샘을 붙잡고는 놔주질 않는다. '다음 수업 준비 안 하나?' 라고 생각하는 나도 사실 박지민이랑 한 마디라도 더 붙여보려 여기에 버티고 있는 거니 저 애들이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특별 수업은 대부분 자습 시간으로 바뀌는데, 그래도 수행평가 때문에 이번 달은 무용 수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박지민이 이야기했다. 그 말에 내가 조금 시선을 끌 수 있겠다 싶었는데, 열심히 자신의 무용 동작을 따라 하는 나에게는 '잘하네~'라고 한 마디를 던지는 게 다다. 잘하는 애들보다는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애들한테 가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설명하며, 내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 무슨 할 말 있니? "


 자신의 앞에 있던 무리를 보낸 후에 무용실에 남아 있는 내 쪽으로 다가오며 박지민이 물었다.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박지민은 내 왼쪽 가슴 위에 있는 명찰을 힐끔 보고는 "응? 정국아?"라고 물어온다. 내 이름을 모를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해서, 심장에 동시에 바늘을 여러 개 꽂는 듯 아프다. 박지민한테 나는 그저 '제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생각보다 더 잔인한 현실에 내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 이제 곧 수업 시작하겠는데~? 얼른 반에 가봐~ "


 어떻게 해야 당신한테 '학생'이 아니라, '전정국'이 될 수 있을까.





" 뭐? 나랑 김태형이랑 무슨 사이냐고? "

" 네. 둘이 뭔 사이 맞잖아요~ "


 석진 형이 사준 쮸쮸바를 입에 물며 물었다. 내 말을 듣던 석진형의 얼굴이 새삼 진지해진다. 왜 안 어울리게 진지한 척이래, 이 형은. 벌써 6월이라 후끈해진 공기를 따라 내 등 뒤에도 땀이 맺힌다. 약간의 바람이 부니, 또 그 축축한 등이 서늘해져 온다. 올해는 진짜 춥겠다. 여름에 엄청나게 더우면 그해 겨울은 진짜 춥다던데…. 쮸웁. 쮸쮸바를 빠는 내 입에서는 방정맞은 소리가 났다.


" 내가 대학생 때 김태형 선생님 과외 가르쳤었어. "

" 헐…지짜여? 대박… 그럼 이르케 같은 학교에서 일하게 된 거 엄청 신기하겠다! "

" 신기하지. "


 전혀 신기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석진 형이 신기하다고 맞장구친다. 둘 사이에 무슨 일 있구만? 저번 달에는 석진 형과 김태형이 유난히 많이 붙어 있었다. 둘이 같이 붙어 다녀서 눈이 호강한다는 애들도 여럿 있었으니까. 하지만 또 6월이 되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학기 초처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몇몇 애들은 두 분 싸우신 거 아니냐고 추측까지 해댔다. 그놈의 '태진 커플'인지 뭔지 때문에 너무나 많은 TMI를 접하고 있다.

 하여튼 둘은 알다가도 모를 사이다. 나는 부가 설명을 재촉하듯 오른손을 뻗어 석진 형의 팔소매를 잡았다. 차가운 쮸쮸바 때문에 손에 묻은 물기에 석진 형의 소매가 조금 젖었다. 평상시라면 뭐냐고 뭐라 한 마디 할 텐데 자신의 젖은 소매만 힐끔 볼 뿐 어째선지 조용하다.


" 김태형 선생님이 예전에는 조금 일을 쳤거든. "

" 일? "

" 그냥… 학생이 하면 안 되는 거…? "

" 그그, 술이나 담배 같은 거요? "

" 응. 그래서 신경 쓰여서 챙기다 보니까 좀 특별해졌지. "


 석진 형 말을 들으니 좋은 계획 하나가 떠올랐다. 떠오른 계획이 뿌듯해서 씨익 하고 웃으니, 석진 형이 "뭐냐, 그 음흉한 웃음?"이라고 묻는다. "아냐. 아무것도!"라고 대답하니 "어쭈? 반말해?"하고 그 손가락을 땀에 조금 젖은 내 머리카락 사이로 쑥 넣어 세게 헝큰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기분이 좀 좋아 보인다. 좋아 보이는 척하는 거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이번 계획이 잘 되면 나중에 석진 형한테 쮸쮸바를 보답으로 사줘야겠다. 아냐, 쮸쮸바로도 부족해. 아이스크림을 박스 채로 사줘야지.

 나는 내가 빨아먹어서 쭈그러진 쮸쮸바에 공기를 넣어 남은 아이스크림까지 탈탈 털어먹고, 멀리 있는 쓰레기통으로 쮸쮸바 껍질을 던졌다. 딱 맞는 곳을 찾은 것처럼 쮸쮸바가 한 번에 휴지통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봐주는 거 없다, 이거야.





 무용실이 있는 5층에는 교직원 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예체능 수업을 하는 교직원 선생님들이 주로 쓰는 곳이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수업 중 몰래 빠져 나온 나는 5층 교직원 화장실에 들어가 얼른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머니 더 깊숙이 손을 넣어 친구한테 빌린 라이터도 꺼냈다. 아니, 걘 집에 돈도 많은 애가 담배 한 개비를 그렇게 아까워하냐.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담배를 주던 반 친구가 생각났다.

 찰칵

 라이터에 불이 붙자, 나는 담배를 가져다 대 불을 붙였다. 불을 붙임과 동시에 바깥 복도에서 수업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이제 곧 있으면 올 거니, 서둘러야 한다. 불을 붙인 담배를 입에 가져다 대 살짝 빨았다. 따뜻한 공기가 내 목구멍을 거쳐 안쪽까지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뭐야, 그냥 공기 들이마시는 것 같은데?


" 콜록 콜록 "


 그게 아니었다. 공기가 지나간 뒤 가볍게 공기를 내뱉으니, 목부터 코끝까지 알싸한 느낌이 든다. 이걸 왜 피는 거야? 맛 대가리도 없는 거! 떨떠름한 표정으로 담배를 한 번 쳐다보는데 담배는 아직도 한참이다. 내가 이걸 다 피워야 하는 걸까. 내 혀를 버려가면서까지…? 내 취향이랑은 전혀 맞지 않는 담배를 보며 더 입에 대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화장실에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시선을 돌리니 박지민이 들어오자마자 매캐한 냄새에 인상을 한 번 찌푸리고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곧 내 교복을 확인하더니 바로 얼굴을 굳힌다. 사실 박지민이 이전 수업시간이 끝나면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이 교직원 화장실을 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호석샘이나 김태형이면 어쩌지…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다행히 박지민이었다.


" 너… 미쳤구나? "


 나에게 다가온 박지민은 내 손에 들린 담배를 잽싸게 빼앗아 화장실 바닥으로 던진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박지민을 쳐다봤다. 반항아 컨셉이다. 그러자 박지민은 뻔뻔한 내 얼굴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썹 한쪽을 더 찡그린다.


" 너… 전정국. 맞지? "

" 네. "


 내 명찰을 다시 확인한 박지민이 근엄한 표정을 지어오며 자신의 허리에 양팔을 걸친다. 그래도 전혀 무섭지 않은데, 여기서는 무서운 척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괜히 시선을 한 번 깔고 다시 박지민을 쳐다봤다. 박지민이 천장을 바라보며 '하!'하고 어색하게 소리를 낸다. '나 정말 화났어.'라는 표현인가 보다.


" 너 몇 학년 몇 반이야. "

" 3학년 4반이요. "

" 박시현샘 반이네? 그 샘 무서운 거… 너도 알지? "


 어? 담임한테 말하면 안 되는데.


" 너 엄청 혼날 거 아니까. 박시현 샘한테 말은 안 할게. 알겠어? "

" 네. "

" 그니까 오늘부터 끊어. "

" … 싫은데요. "


 내 말에 박지민이 정말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날 노려본다. 미간 사이에 그어져 있는 일자 세 개가 귀엽다. 거기에 가늘게 늘어진 눈매마저 귀여워 실수로 웃음이 날 뻔했다. 난 이빨로 내 입안 속살을 깨물며 새어나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잡았다. 그렇게 귀엽게 노려보시면 제가 어떻게 무서운 척을 합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이 아니라 병아리 선생님이라구요….


" 너 진짜 안 되겠다…. "

" …. "

" 점심 시간이랑 저녁 시간마다 와서 나한테 확인받아. "

" …. "

" 너 담배 끊을 때까지 내가 냄새나는지 아닌지, 확인할 거야. "


 알겠다는 나의 말에 박지민이 씩씩거리며 나간다. 그리고 박지민이 나감과 동시에 나는 겨우겨우 참았던 웃음을 해제시켜 소리없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누군가는 나보고 못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약았다고 하겠지. 하지만 이런 거 말고는 방법이 없는걸. 나는 내 생각대로 굴러가는 이야기의 시작에 기분이 좋아 바닥에 떨어진 꺼진 담배꽁초를 들어올렸다. 흠… 이걸 계속 필수는 없고… 그냥 한 번만 빨고, 옷에 냄새만 뭍여야 겠다.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나가는데, 계속 떠오르는 박지민의 화난 표정에 이상하게 기분이 계속 들뜬다. 나 진짜 변태인가?
















( 좀 긴 오늘의 글 후기 )


 안녕하세요, 위듀비입니다♡

 까먹지 않고 레몬 클래스를 들고 왔다구요! 사실 이번 편으로 다들 아시게 되었지만, 레몬 클래스의 큰 주제는 '성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1화부터 석진이의 모든 감정이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고민이 서술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몇몇 분들은 석진이의 모호한 감정에 답답하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번 편이 저한텐 정말 큰 권태기 화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화인데, 감정 서술이 너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한 자 한 자 쉽게 풀린 게 하나 없었습니다. 모든 글자가 다 막혔던 것 같아요…. 제 부족한 실력으로 인해 '성정체성'이라는 중요한 주제가 어물쩍 가벼운 주제처럼 넘어갈까봐 걱정이 너무 되더라고요… 지금도 실력 부족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어쨌든 한 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화도 얼른 가지고 오도록 할게요… 이제부터는 아주 절정으로 달리는 석진이와 태형이의 감정을… 제가 잡아낼 수 있을까가 걱정이 많이 되지만… 그래도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그리고 제 업로드 날짜는 제가 트위터에 가끔 올리니 확인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사담 많은 계정이니, 팔로우 하지 않고 가끔 사담처럼 올라오는 글 업로드 요일만 확인하셔도 될 것 같아요 :) @With_UB

 제 포타 구독해주시고, 정성스럽게 댓글과 하트를 남겨주시고 멤버십 신청을 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할게요!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많이 감사하고, 사랑해요!



 



* 제목을 [뷔진/국민], [뷔진]으로 나눈 것은 '국민'이 나올 때랑 안 나올 때 구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몇몇의 구독자분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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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진/국민] 레몬 클래스 - 7